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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History

오더플러스의 탄생과 발전

오더플러스의 밑거름

박상진 대표는 맥주집 사장님들을 통해 식당들이 식자재에 대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 깊이 파헤쳐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식당 아르바이트입니다. 낮에는 오더플러스 기획과 개발을 위한 노력을 하고,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신사동 랍스터 집에서 서빙, 주방보조, 카운터 업무 등 가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업무를 했습니다. 심지어 급여를 전혀 받지 않고 무급으로 일하는 대신, 그 대가로 사장님께 언제는 편하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그 동안 그렇게 받기 어려웠던 투자가, 오더플러스라는 외식업 식자재 주문 앱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015년 10월 스타트업 전문 액셀러레이터로부터 시작하여 12월, 1월까지 총 세 건의 투자가 추가로 연이어 유치되었습니다. 사업의 초기 자금이 마련된 것입니다.

오더플러스의 탄생

오더플러스 서비스 시작과 함께 꾸준히 거래를 이어오고 있는 감사한 매장 중 한 곳입니다!


2016년 4월, 오더플러스의 첫 클로즈 베타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신천에 위치한 한 맥주 집에 냅킨 한 상자를 보낸 것이 첫 거래였습니다. 아쉽게도 그 맥주집은 그 뒤로 단 한 번도 재주문을 하지 않았지만, 팀원들에게 그 첫 주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오더플러스는 같은 해 7월까지 다섯 개의 매장에 안정적인 납품을 진행하게 되었고,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유통업체들과 제휴하며 사업은 활기를 띠었습니다.
2016년 9월, 웹사이트 오픈과 동시에 오픈 베타를 시작했습니다. 정식 사이트를 출시한 첫 달, 100건에 가까운 회원가입 수를 기록했습니다. 뚜렷한 청신호였습니다. 외식업 식자재 유통에서 한 달에 100개 매장을 고객으로 유치한다는 것은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객을 모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0개의 고객신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담과 식자재 납품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에 실제 구매 전환율은 낮았습니다.

나아가는 오더플러스

이후 2017년 한 해 동안, 오더플러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고객센터를 만든 것입니다. 당시 CS 문의가 많이 왔으나 고객 응대 체계가 제대로 마련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개발담당자들이 개발 중 전화를 받아야 하는 등 업무 혼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17년 1월, 고객 응대를 위한 사무실 전화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객센터가 제대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식당들과 공급업체 사이에서 통합주문센터 운영이 필요했기 때문에 고객 응대와 다소 혼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력 끝에 조금씩 체계를 잡아가며 큰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 후에 집중한 것은 공급업체와 거래 매장 수를 차근차근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공급업체가 어느정도 모여야 매장이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고, 거래하고 있는 매장이 어느정도 있어야 공급업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과가 당장 눈에 보이는 작업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2017년 7월, 사업이 비교적 안정화되고, 오더플러스는 업계 최초로 비대면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영업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식당 유통업체들이 식당을 직접 방문하는 것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더플러스는 고객의 요청이 있을 때만 방문하고, 그 외에는 모두 온라인 상담을 통해 영업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즉, 고객의 별도 요청이 없다면 주문부터 배송까지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고객들이 온라인을 통한 견적 비교와 상담을 더 편하게 여겼기 때문에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고객 유치 속도가 빠르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오더플러스는 매달 수백 개의 식당이 회원가입을 신청하고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성장 궤도를 그리고 있습니다.